직장을 그만두고, pte 준비를 시작했다
약 일년간 다닐 직장이 필요했다. 호주로 유학을 떠나기 전, 1년의 시간동안 나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할까 아니면 짧게라도 직장을 다녀볼까 하다 내린 결론은 후자였다. 짧게 다니고 말 직장이었지만,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적어도 중견기업 정도는 들어가면 좋겠다고 조언해줬다. 사실 그 말이 맞는거였지만, 나에게는 중견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취준을 할 정신적 여력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간단한 사무직 정도로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병원에서 일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곧장 나는 병원 코디네이터 자격증을 땄다. 짧게 다닐 직장, 급여가 많지는 않더라도 여유 있고 재미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병원을 중심으로 구직을 시작했고, 운이 좋았던건지 아니면 이 또한 학벌의 도움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비교적 쉽게 취직이 되었다. 이력서를 넣는 족족 연락이 왔고, 그 중 집에서 제일 가깝고 또 인터뷰 당시 느낌도 좋았던 곳에 합격을 해서, 그렇게 병원 코디네이터로서의 일을 시작했다.
과목은 피부과였고,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아니라 미용 시술 전문 병원이라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고, 코디로서 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무전기 착용, 병원 crm 사용, 전화 및 손님 응대하기 등 기본적인 일들은 인터넷 서치 덕에 이미 알고 있었던 일들이었고 그 외에 이 병원 자체 내에서 코디가 해야 할 일들이 있었는데, 자잘자잘하게 챙겨야 할 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일을 배워간다고 생각했는데, 병원 경력이 없는 신입으로 입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투는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한달도 지나지 않아서 내게 쏟아지는 비난들을 견디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어떤 일을 잘못하면 단체 sns에 공공연하게 책임 소재를 묻는가 하면 감정섞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모르는 일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지만, 막상 질문을 던지면 대답은 아주 차갑게 돌아오기 일쑤였다. 게다가 같이 일하는 동료는 어떤 배움도 없는 사람이라 생각 될 만큼 예의가 없는 사람이었다. 코디 팀장은 신입이 겪어야 하는 이러한 고충들을 커버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린 사람이었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근무 두달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총괄실장에게 퇴사 의사를 전달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여초회사가 다들 그렇다며 좀만 더 버텨보라는 말이었다. 가족들의 조언을 구하고 나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나는 5월까지의 근무를 통보했고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하고 나니,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아니다 싶을땐 역시 미련없이 떠나는게 맞는 것 같다.
6월이 되었다. 벌써 올해의 절반이 지나간거다. 달력을 쓸어보며 그냥 지나쳐버린 시간들을 아까워했다. 남편과 카페에 앉아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둘다 올해의 남은 시간들을 유용하게 보내보자며 굳은 결의를 다졌다. 결의를 가슴에 품고 또 한 잔의 커피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안방에, 나는 거실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한다. 서로의 결심이 시작되는, 그리고 지켜지는 순간이다.
나는 다시 유학을 떠나기 위한 준비에 몰두한다. 진작 했어야 했던 일들이다. pte 시험을 결제하고, 앱유니를 설치하고, 공부를 시작해본다. 언제나 첫 시작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시작이 반이다. 나는 오늘 pte 공부를 시작했다. 목표일을 잡고, 하루씩 그어나가다보면 어느새 다다라있을 그날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노력이란걸 해보려 한다.